선명해야 할 풍경이 끝내 선명해지지 않을 때, 시선은 대상보다 그 사이에 놓인 거리에 머문다. 신상준은 흐릿함을 하나의 방법론으로 삼아, 환경 속에서 자신의 위치와 세계를 감각하는 방식을 회화로 탐구한다. 그의 작업은 크게 두 갈래의 이미지에서 시작되는데, 하나는 디지털 게임의 장면이다. 지방에서 서울로 이주하며 ‘어디에 속하는가’라는 감각이 흔들리던 시기, 작가에게 게임 속 풍경은 현실보다 더 주체적으로 움직이고 판단할 수 있는 공간으로 다가왔고, 그 미묘한 거리감은 역설적으로 화면을 더 선명한 ‘풍경’으로 만들었다. 다른 하나는 고향의 풍경이다. 게임 속에서 반복적으로 마주했던 쇠락의 장면들이 시선의 기준점이 되면서, 익숙했던 고향의 곳곳은 이전에는 보지 못했던 앙상함과 오래됨을 띤 채 새롭게 포착되기 시작했다.
그의 회화가 갖는 특징은 의도적으로 희석된 선명함과 겹겹이 쌓인 막에 있다. 캔버스나 종이에 아크릴릭으로 형상을 만든 뒤 수채를 더하고, 그 위를 얇은 한지로 덮어 물과 아크릴릭을 섞은 풀로 배접하는 과정을 반복한다. 그러는 사이 이미지는 번지고 아크릴릭은 종이를 반투명하게 만들며, 마른 뒤에는 젖은 듯한 몽환적 표면이 남는다. 흥미로운 점은, 더 분명히 보려 이미지를 고정하려 했던 배접의 시도가 오히려 번짐을 낳았다는 데 있다. 그 결과 화면은 볼수록 흐려지는 역설을 누적하고 이 모순은 작업의 기법이자 개념으로 자리 잡는다.
이렇게 만들어진 흐릿함은 작가와 세계 사이의 완충지대가 된다. 신상준은 풍경을 하나의 이야기로 쉽게 열어두기보다, 표현과 지지체가 뒤섞인 불투명한 표면을 앞세워 관람자의 진입을 잠시 멈춰 세운다. 대신 관람자는 그 막을 따라가거나 우회하며 겹쳐진 층위 사이에서 유실된 감각을 더듬고, 각자의 기억과 경험을 호출해 파편화된 서사를 만들어낸다.
결국 신상준의 회화는 도달할 수 없는 풍경에 대한 기록이자 고정되지 않는 것을 어떻게든 붙잡아보려는, 어떻게 보면 덧없는 시도의 결과물이다. 선명함을 유보한 화면은 세계를 파악하려는 몸짓이 남긴 번짐과 잔상, 그리고 그 사이의 거리를 쌓아 올리고, 그 흐릿함의 층 속에서 작가는 가변적인 세계 앞에 선 자신의 위치를 계속해서 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