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민의 작업은 우리가 세계를 보고 이해한다고 믿는 방식에 대한 질문에서 출발한다. 그는 현실을 하나의 명확한 장면으로 제시하기보다 기억과 경험, 관찰의 파편들이 겹쳐지며 형성되는 이미지의 상태에 주목한다. 서로 다른 시간과 맥락에서 비롯된 장면들은 화면 위에서 중첩되고 스며들며, 완전히 분리되지도 하나로 수렴되지도 않은 채 느슨한 관계를 이룬다.
그의 작업은 기성의 평면을 전제로 삼지 않는다. 닥섬유를 쌓고 깎아 지지체를 만드는 과정에서부터 화면이 시작되며, 이렇게 형성된 표면은 이미지를 담는 배경이 아니라 이미지가 발생하는 물리적 조건으로 작용한다. 형태를 갖기 이전의 상태에서 작업을 출발시키는 이러한 방식은 익숙한 사각의 프레임과 평평한 회화의 관습에서 한 발 물러나 회화가 놓이는 자리와 방식 자체를 다시 설정한다. 이처럼 형태를 갖기 이전의 상태에서 출발하는 제작 과정은 회화를 하나의 평면적 재현이 아니라 형성되는 구조로 전환시킨다.
그 위에 놓이는 도상들은 단일한 장면을 묘사하기보다 서로 다른 시점에서 채집된 이미지의 흔적으로 남는다. 작가는 이 단편들을 반복적으로 그리고 겹치며 관계를 조율하고, 그 과정 속에서 화면은 점차 두께와 물성을 획득한다. 회화는 더 이상 벽에 고정된 평면으로 머무르지 않으며, 스스로 서 있는 구조이자 공간 속에서 마주하게 되는 대상으로 확장된다. 이는 완결된 결과라기보다 축적과 수정, 다시 만들기의 반복 속에서 형성되는 상태에 가깝다. 이러한 축적의 시간은 작품을 단일한 순간의 산물이 아니라 지속되는 행위의 흔적으로 인식하게 만든다.
이때 이미지와 표면, 공간과 감상은 분리된 요소로 나뉘지 않는다. 관람자는 작품을 하나의 정면에서 파악하기보다 이동과 체류의 시간 속에서 서로 다른 단면을 경험하며, 무엇을 보았는가보다 어떻게 보게 되는가의 문제와 마주하게 된다. 문민의 작업은 회화를 하나의 대상이 아닌 인식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드러내는 장으로 열어 둔다. 그리고 그 과정은 끝내 고정된 결론에 도달하지 않으며, 다시 질문으로 되돌아오는 순환 속에서 지속된다.